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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유전자와 비만의 연결고리: 수렵 채집인의 지방 저장 전략은 지금도 작동할까?
    고고 2025. 4. 14. 15:20

    고대 유전자와 비만의 연결고리: 수렵 채집인의 지방 저장 전략은 지금도 작동할까?

     

     

    1. 서론: 비만은 질병인가, 진화의 산물인가?

    현대 사회에서 비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건강 이슈 중 하나다. 단순히 체형 문제를 넘어, 비만은 심혈관 질환, 당뇨, 고혈압, 지방간, 암 등 다양한 만성 질환의 원인이 되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비만 유전자’는 고대 인류에게 생존에 유리했던 요소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고유전학은 이 의문에 대해 진화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살아가던 고대 인류는 식량을 매일 확보해야 했고, 언제든 굶주림과 극심한 에너지 부족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에너지를 쉽게 저장하고, 지방을 축적해두는 능력은 강력한 생존 도구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음식이 풍부해졌고, 신체 활동은 줄었다. 이로 인해 과거 생존을 도왔던 유전자가 오늘날에는 오히려 비만이라는 문제를 야기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고대 인류가 어떻게 ‘에너지 저장 전략’을 유전적으로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유전자가 어떻게 현대 비만과 연결되는지를 고고유전학적 관점에서 풀어본다. 비만은 유전자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가 만든 진화의 역설일 수 있다.


    2. 고대 인류의 지방 저장 전략: 생존을 위한 필수 기능

    고대 인류는 날마다 에너지 결핍과의 싸움 속에 살았다. 사냥이 실패하거나 계절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할 경우, 신체에 축적된 지방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자원이 되었다. 지방은 단위당 칼로리가 높고, 수분 손실도 적기 때문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진화 과정에서 선택되었다.

    고고유전학자들은 고대 유골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하여, 비만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대표적인 유전자는 다음과 같다:

    ✔ FTO 유전자

    ‘비만 유전자’로 불리는 FTO는 식욕 조절과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며,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은 포만감을 느끼기 어렵고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이 유전자는 약 40,000년 전 고대 유럽 인류 유전체에서도 확인되었으며,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강력한 이점이었다.

    ✔ LEPR 유전자 (렙틴 수용체 유전자)

    렙틴은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어 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는 호르몬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렙틴 저항성을 유도하는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했을 수 있다. 이는 신체가 에너지를 쉽게 저장하고, 소모를 최소화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낸다.

    ✔ PPARG 유전자

    이 유전자는 지방 세포의 분화와 지방 대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정 변이는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면서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지방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 고대 사회에서 생존율을 높였을 수 있다.

    이러한 유전자들은 모두 ‘에너지 절약형’ 또는 ‘지방 축적형’ 유전자로, 고대 인류에게는 굉장히 유리한 요소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그 기능이 과도하게 발현되어 비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3. 진화적 불일치: 생존 유전자가 질병을 유발하다

    현대 사회는 고대 인류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환경이다. 언제든지 식사를 할 수 있고, 고열량 음식은 풍부하며, 신체 활동은 최소화되었다. 이 환경에서 고대 인류의 지방 저장 유전자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과잉 축적을 유도하는 문제 유전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고고유전학은 이 문제를 ‘진화적 불일치(Evolutionary Mismatch)’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유전자가 진화한 환경과 현재의 환경이 너무 달라지면서 유전자의 기능이 부적절하게 작용하게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고대에는 렙틴 저항성이 굶주림에 강한 개체를 만드는 데 유리했지만, 현대에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 지속적으로 과식을 유도하는 원인이 된다. FTO 유전자 역시 사냥 실패에 대비한 식욕 강화 메커니즘이었지만, 현대에서는 비만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최근의 유전체 연구에서는 비만 유병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고대 유전자 빈도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남태평양 섬 주민이나 북유라시아 계통의 일부 민족들은 에너지 저장 유전자의 빈도가 높은데, 이는 과거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유전자는 당뇨, 고지혈증, 복부 비만 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비만은 단순한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 환경과 현대 문명의 충돌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 고대 유전자의 이해가 만드는 비만 치료의 미래

    고대 유전자를 단순히 비만의 ‘범인’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이 유전자를 생존 전략으로 이해하고, 그 메커니즘을 역이용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맞춤형인 비만 치료 전략을 만들 수 있다.

    ✔ 유전자 기반 맞춤형 다이어트

    FTO, LEPR, MC4R 유전자를 분석하면 어떤 유형의 식단이 가장 효과적인지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고탄수화물, 고지방, 저탄수화물, 간헐적 단식 등은 유전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고대 유전자에 따라 맞춤형 영양 전략을 수립하면 지속 가능하고 생리적으로 적합한 체중 조절이 가능하다.

    ✔ 진화적 운동 전략

    고대 유전자는 근력 중심 운동 vs 유산소 중심 운동의 반응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지방 대사가 빠른 유전자형은 고강도 인터벌 훈련(HIIT)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이는 고대인의 **‘빠르게 사냥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신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 약물 및 유전자 조절 기술

    현재 일부 제약사에서는 FTO 유전자 변이 억제제를 연구 중이며, 렙틴 수용체 민감도를 높이는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향후에는 CRISPR 기술을 통해 비만 유전자 자체의 발현을 조절하는 방법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고고유전학은 과거의 생존 전략을 해독함으로써, 현대의 비만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고대지만, 해답 역시 그 뿌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결론 요약

    비만은 단지 현대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라, 고대 인류의 생존 전략이 남긴 유전적 유산일 수 있다. 고고유전학은 이 유전적 기원을 밝혀냄으로써, 비만을 탓하거나 부끄러워할 문제가 아닌, 진화의 산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그 유산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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